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스 영화 (문단 편집) === [[1936년]] ~ [[1940년대]] === [[그리스]]에서 [[1936년]] 군부 [[쿠데타]]가 일어나자, 수많은 그리스 영화인들은 군부에 의한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. 그리스 영화인들은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고 [[자유주의]] 계열이었기 때문이다. 이 때문에 그리스 영화인들은 [[키프로스]], [[유고슬라비아 왕국]], [[루마니아]] 등으로 뿔뿔이 국외로 탈출했으며,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끝나고 와서야 복귀한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에 그리스는 [[베니토 무솔리니]]의 [[이탈리아]]가 [[1940년]] [[10월 28일]] [[그리스 침공|그리스를 침공]]하여 본격적인 [[전쟁]]에 돌입한다. 하지만 무솔리니의 [[이탈리아군]]은 [[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|그리스에서 완패를 당하고 '''오히려 침공 1달만에 이탈리아가 그리스한테 땅을 삥뜯기는''']] [[병맛]]나는 상황에 처했다. 이 때 그리스에는 '''대승에 환호하며 승전을 축하하는 선전 영화가 수십여편이나 쏟아져 나왔다.''' [[나치 독일]]의 [[아돌프 히틀러]]는 처음에는 이탈리아를 [[손절]]하고 [[그리스]]한테 승전 축하 [[전보]]를 보내며 그리스를 [[추축국]]으로 끌어들이려 애썼다. 하지만 무솔리니의 [[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|대삽질]]때문에 독일이 [[북아프리카 전역]]을 책임져야 했고, [[영국]]이 그리스와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는 결국 [[연합국]]에 붙었다. 결국 히틀러는 그리스에 대한 태도를 우호적에서 적대적으로 바꾼다. [[1941년]] [[4월 6일]] 히틀러는 대대적인 그리스 침공을 감행했다. [[독일군]]은 [[이탈리아군]]과 비교도 안 되게 강한 전쟁 기계에다 바로 밑에 있던 [[불가리아 왕국]]까지 슬슬 구슬려 참전시켜 협공을 했던지라 [[그리스군]]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. 결국 [[그리스 왕국]]은 3주만인 [[1941년]] [[4월 27일]] 멸망당했다. 그리스 왕국의 패망 이후 나치 치하의 [[그리스국]]이 세워졌다. 나치 독일 치하의 그리스 영화는 [[독일 영화]] 시스템으로 개조당했으며, [[그리스어]] 영화 제작이 철저히 금지되었다. 그래도 같은 나치 치하를 겪었던 [[폴란드 영화]]보다는 상황이 나았다. 폴란드는 아예 [[폴란드 제2공화국]] 시절의 [[폴란드 영화]]를 보면 [[아우슈비츠]]로 끌려가던 시절이었는데 나치 독일은 영화를 구실로 그리스 국민들을 폴란드 수준으로 탄압하지는 않았다. 그리스 영화들은 나치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계속 보존되었다. 이렇게 한 것은 [[히틀러]]가 그래도 그리스-이탈리아 전쟁에서 이긴 그리스를 일부 '봐준' 것이었다. 물론 다른 분야는 철저히 탄압했다. [[1945년]]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[[나치 독일]]과 [[일본 제국]]의 패망으로 종전되고, 그리스는 다시 독립국이 된다. 이에 군부 쿠데타 시절 국외로 탈출했던 그리스 영화인들이 대거 그리스에 복귀하게 된다. 이는 [[1950년대]]의 그리스 영화 황금기로 이어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